- Choi Sungchul
광장에서 In The Plaza
최성철展 / CHOISUNGCHUL / 崔星喆 / sculpture 2023. 10.24 – 11.12
「광장에서 In The Plaza」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연작(series)이다. 등신대 높이로 서 있는 인물조각은 정면을 응시하거나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있으며, 감긴 눈과 닫힌 입술로 그 어떤 표정도 짓지 않는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 최고의 색채감각이 돋보이는 강렬하고 화려한 분위기, 재료의 물성과 상징성을 감추는 미학적 즐거움을 선사하던 ‘색채조각가’ 최성철의 새로운 작품 형식이다.
경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한국적 팝-아트로 대중과 만나던 작가는 최근 수년 간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écède l’essence)’라는 명제로 20세기를 물들인 사르트르와 보봐르의 선언을 철저하고 꾸준히 탐구하는 작업에 몰두해 왔다. 예술의 본질(essence)을 찾는 작업을 뒤로한 채, 실존주의(existentialism) 철학을 자양분 삼아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신작 「광장에서」는 21세기 인간의 존재적 의미와 함께, 현상의 일부이자 대상, 그리고 주체로서의 개인과 집단의 위치를 명확한 예술적 관점으로 대담하면서도 매우 아름답고 스마트하게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유년 시절과 중고등학교 시절을 온전히 보낸 광화문 광장의 모습에서 현대 한국적 실존주의를 집중 모색한다. 작품의 소재인 ‘광장’에 관한 작가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매캐한 연기와 뜨거운 눈물들이 화석이 되어버린 그곳. 새길을 내면서 그 화석들을 없애버린 곳. 해가 광장을 가로지르고 권위주의를 잔뜩 묻힌 거대한 문화회관의 그림자가 사라질 즈음, 광장 건너편 골목엔 또 다른 뜨거움으로 넘친다. 시원한 소맥이 여름밤 소나기처럼 더위를 식히고, 그들의 입에선 마술사처럼 불이 뿜어져 나온다.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지켜본 그 광장은 눈에 선한데, 환갑을 몸에 새긴 나한테는 참으로 생경하다. 광장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세종대왕은 변하지 않는 표정으로 광장을 내려다 본다. 말할 수 없는, 들을 수 없는, 볼 수 없는 지금을.”
「광장에서」는 작가가 의도한 대로 시간이 지운 흔적들을 고스란히 새겨 안는다. 이편에서 저편을 가로지르는 낮과 밤의 이중주를 따라, 끝없이 채워지는 술잔처럼 어김없이 밀려들고 빠져나가는 수많은 기억들을 담담한 그리움으로 표현한다.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으나, 모든 상황을 말없이 지켜보는 존재로서 정면으로 또는 지긋히 내려보는 시선으로 ‘있는 그대로’의 광장을 힘껏 끌어 안는다.
「광장에서」 시리즈의 작품들은 남녀 구별이 되지 않으며, 지극히 중성적이다. 작품을 정면에서 바라본 외곽선과 측면 외곽선은 생물학적인 성별이나 성정체성과는 별개의 형태이며, I자 형식에서 보여지는 외곽선은 작가의 깊은 고민을 읽을 수 있는 흔적들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조각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율동감과 운동감인데, 이는 고대 그리스 로마 조각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이어진 ‘조각의 문법’이었다. 최성철 작가는 새로운 형식으로 이러한 문법을 비틀어 독창성을 이끌어 냈다. 조각 작품으로서의 아름다움을 과감히 뒤로한 채 신체의 모든 부분을 한 덩어리로 묶고, 그 안에 유려한 곡선과 절제된 색채들을 개입시켜 자칫 딱딱하고 완고하게 흐를 수 있는 작품의 분위기를 일순 누그러뜨리는 고도의 지적 논리로 작품을 완성했다. 작가의 예술성이 실존의 의미와 진가를 통째로 끌어올리는 바로 그 지점이다.
최성철 작가는 인하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조각을 공부하고 이탈리아 까라라 국립미술원 조각과를 졸업했다. 그는 조각가의 삶을 살며 이탈리아, 독일, 서울 등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고, 중국 샤먼의 ‘한중조각가국제교류전’, 뉴욕의 ‘Art Hampton’, 스위스 바젤의 ‘BASEL SCOPE ART FAIR’, 평창비엔날레 등 세계적인 규모의 아트 페어 참여 작가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이탈리아 미누치아노 시립박물관, 이탈리아 우디네 시청ㆍ까라라 시청ㆍ포르둔지아누스 시청, 대한민국의 국립 현대 미술관, 콜롬비아 이바게 시청 등에서 현재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