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o Iksang

유익상

우연히 만난 풍경 展

2014. 5.1-5.30

“사막에서 히브리인의 원정, 지중해를 횡단하는 반달 부족의 원정,

스텝(Steppe)을 가로질러 가는 유목민들의 원정, 중국인의 원정.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곳은 언제나 탈주선 위에서이다.”

– 질 들뢰즈 (Gilles Deleuze)

유익상의 사진작업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어떤 시각적 회의로부터 기인된다.

눈을 통해 들어온 빛은 0.0013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망막에서 모아지고, 시신경을 거쳐 대뇌피질에 전달되어 이미지로 감각된다. 카메라의 촬영 메커니즘은 인간의 시각을 통한 이미지 인식작용 과정과 닮아 있다. 오늘날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된 찰나적 이미지의 파편들은 필름 대신 이미지센서가 스캔하고, 디지털 파일로 변환하여 저장한다. 이러한 새로운 이미지 저장방식에서 과거 아날로그 시대의 그것과 재미있는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아날로그 시대 필름을 이용한 저장방식은 가로식 즉, 촬영된 시간의 선형적 흐름에 따라 가로로 이어져 저장되는 반면 디지털 저장방식은 세로식 즉, 디지털 파일로 변환된 이미지가 저장장치에 중첩적으로 쌓이는 형태로서 저장된 이미지를 불러오고, 분류하는 방식이 매우 임의적(Random)이며 편리하다. 지난날 ‘레이 메츠커(Ray K. Metzker)’의 질문 ‘촬영한 사진들 중 왜 한 컷의 사진만을 고르려고 하는가?’에서 출발한 새로운 밀착인화의 조합으로 이루어낸 흑백의 도시 이미지를 나는 기억한다. 그는 어쩌면 사진이 가지고 있는 물성에 기초한 새로운 조형적 미학을 발견하고자 했음이리라… 다시 말해 이른바 가로식 저장방식을 이용한 새로운 관조의 방식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유익상의 작업은 줄곧 시간과 이미지 사이의 관계성을 탐구하는데 있었다. 동일한 장소를 다른 시간으로 촬영함으로서 보편적 장소가 개인적이고 은밀한 장소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한 화면 안에 다양한 시간의 파편들을 임의적 형태로 재조합하여 유익상의 유년기의 트라우마를 표현하였다. 최근에는 대상을 삼각대 없이 연속적으로 촬영하여 한 화면 안에 중첩시킴으로서 소멸과 생성의 역동적 기운을 담아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즉, 들뢰즈의 ‘시뮬라크르(simulacre)’의 시각적 재현작업이랄까?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플라톤이 보았던 원형인 이데아의 복제물로서 시뮬라크르가 아닌 스스로 자신의 공간을 끊임없이 생성시키고, 파괴하는 것을 반복해 가는 역동적이고, 영속적인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눈이 가진 시각적 부조리(끊김 없는 이미지의 연속)를 고발하고자 한다. 유익상은 사진가이기 때문에 사진기를 매개로 세상(시뮬라크르)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리고 사진기는 찰나동안 역동적 기운으로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고 있는 세상의 시간을 정지시킨다. 베르그송의 ‘지속(Duree)’이라는 것이 결국 순수기억으로 내재된 과거의 현실화라는 진보(Progress)라면, 나와 대상과의 우연한 조우의 결과물인 새로운 시각표현 방식은 베르그송의 ‘이미지의 총합’ 개념에 기초한다.

“사막에서 히브리인의 원정, 지중해를 횡단하는 반달 부족의 원정,

스텝(Steppe)을 가로질러 가는 유목민들의 원정, 중국인의 원정.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곳은 언제나 탈주선 위에서이다.”

– 질 들뢰즈 (Gilles Deleuze)

나의 사진작업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어떤 시각적 회의로부터 기인된다.

눈을 통해 들어온 빛은 0.0013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망막에서 모아지고, 시신경을 거쳐 대뇌피질에 전달되어 이미지로 감각된다. 카메라의 촬영 메커니즘은 인간의 시각을 통한 이미지 인식작용 과정과 닮아 있다. 오늘날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된 찰나적 이미지의 파편들은 필름 대신 이미지센서가 스캔하고, 디지털 파일로 변환하여 저장한다. 이러한 새로운 이미지 저장방식에서 과거 아날로그 시대의 그것과 재미있는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아날로그 시대 필름을 이용한 저장방식은 가로식 즉, 촬영된 시간의 선형적 흐름에 따라 가로로 이어져 저장되는 반면 디지털 저장방식은 세로식 즉, 디지털 파일로 변환된 이미지가 저장장치에 중첩적으로 쌓이는 형태로서 저장된 이미지를 불러오고, 분류하는 방식이 매우 임의적(Random)이며 편리하다. 지난날 ‘레이 메츠커(Ray K. Metzker)’의 질문 ‘촬영한 사진들 중 왜 한 컷의 사진만을 고르려고 하는가?’에서 출발한 새로운 밀착인화의 조합으로 이루어낸 흑백의 도시 이미지를 나는 기억한다. 그는 어쩌면 사진이 가지고 있는 물성에 기초한 새로운 조형적 미학을 발견하고자 했음이리라… 다시 말해 이른바 가로식 저장방식을 이용한 새로운 관조의 방식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나의 작업은 줄곧 시간과 이미지 사이의 관계성을 탐구하는데 있었다. 동일한 장소를 다른 시간으로 촬영함으로서 보편적 장소가 개인적이고 은밀한 장소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한 화면 안에 다양한 시간의 파편들을 임의적 형태로 재조합하여 내 유년기의 트라우마를 표현하였다. 최근에는 대상을 삼각대 없이 연속적으로 촬영하여 한 화면 안에 중첩시킴으로서 소멸과 생성의 역동적 기운을 담아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즉, 들뢰즈의 ‘시뮬라크르(simulacre)’의 시각적 재현작업이랄까?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플라톤이 보았던 원형인 이데아의 복제물로서 시뮬라크르가 아닌 스스로 자신의 공간을 끊임없이 생성시키고, 파괴하는 것을 반복해 가는 역동적이고, 영속적인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눈이 가진 시각적 부조리(끊김 없는 이미지의 연속)를 고발하고자 한다. 나는 사진가이기 때문에 사진기를 매개로 세상(시뮬라크르)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리고 사진기는 찰나동안 역동적 기운으로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고 있는 세상의 시간을 정지시킨다. 베르그송의 ‘지속(Duree)’이라는 것이 결국 순수기억으로 내재된 과거의 현실화라는 진보(Progress)라면, 나와 대상과의 우연한 조우의 결과물인 새로운 시각표현 방식은 베르그송의 ‘이미지의 총합’ 개념에 기초한다. 2014.3 유익상

시간의 흐름이 담아내는 생명력으로 관람객들과 교감하는 통로로서의 사진 하계훈

유익상은 사진작업을 통해 이미지와 시간의 관계를 탐구한다. 작가는 동일한 지점을 서로 다른 시간에 촬영하고 그 이미지들의 부분부분을 몇 개의 크기를 가진 작은 화면으로 나누어 모자이크식으로 조합함으로서 한 화면 안에 다양한 시간의 표정이 존재하는 흥미로운 작품을 제작해왔다. 유익상의 이러한 작품을 통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서로 다른 차원의 축이 한 곳에서 접점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요소를 하나로 묶는 주체와 그 주체가 동원하는 도구가 적절하여야 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대상에 대한 관심은 19세기말 유럽의 인상파 화가들에게서도 중요한 모티브로 선택되었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대상 그 자체보다는 대상에 적용되는 빛의 변화에 집중되어 있으며, 아직 인공조명의 일상적인 사용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햇빛의 작용이 이루어지는 낯 시간에 한정되어 있었다.

또 다른 유형의 작품에서 유익상 은 자신이 포착하는 이미지가 순간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 속에서의 좌표와 모습을 달리하는 변화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 속의 이미지는 다분히 회화적이지만 유익상은 화가들의 붓이 미처 다루지 못하는 화면 전체의 동시성과 시간성을 카메라를 통해 구현해내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선택한 대상과 장면을 짧은 순간에 반복적으로 촬영하고 그러한 이미지들을 한 화면에 중첩시킴으로서 관람자는 분절되고 다시 연속된 시간을 시각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바다나 산 등 시간의 흐름에 의해 기록되는 이미지의 변화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자연의 모티브를 다룬 작품들에서는 마치 시력이 나쁜 사람들이 안경을 벗었을 때, 포착하는 이미지의 흔들림이나 번짐 혹은 겹침과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결국 대상과 주체 사이의 명확하고 엄격한 관계를 완화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작가가 카메라 렌즈를 통해 훑고 지나가는 시선은 화면 안에서 고전주의적인 중심 집중의 시선으로 일관되게 처리되기 보다는 화면 전체를 골고루 담아내게 되며, 아카데미적인 정확성과 명료함 보다는 회화적(painterly)이며, 개방적인(open)형식으로 담아져서 관람자들에 좀 더 친근하게 작품에 다가올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제작된 작품들은 주제면에 있어서도 작가가 선택한 도시의 유기적 생명체적 성격이나 자연의 물활론적 기운을 보다 잘 드러내주는 측면이 강조된다. 유익상의 작품에서 우리는 시각적 경험뿐만 아니라 도시의 소음과 파도소리, 바람소리, 햇빛의 촉감과 바닷가의 비릿내까지 오감의 촉수들이 살아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의 결합을 기초로 한 작업에서 유익상은 기계적 작업의 정확성과 객관적이고 냉정한 이미지의 포착과 반영을 넘어서기 위하여 촬영을 보조해주는 고정 장치인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는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삼각대 없이 촬영하는 것은 촬영 순간에 작가가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신체 반응으로서의 심장 박동과 맥박 그리고 호흡으로 인한 생명의 운동으로 이루어진 미세한 움직임들을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그대로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함으로서 작가는 마주보는 이미지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카메라에 의해 규정되는 기계적 정확성과 객관성을 매개로 하는 냉정한 관계를 넘어 스스로의 생명력과 에너지를 바탕으로 관람객들과 교감하고 활성화 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